머니&마켓 #market#스테이블코인
[심층분석] 디지털 유로가 온다
김세진
등록일: 2020-07-30  수정일: 2020-07-30


최근 유럽 곳곳에서 디지털화폐 관련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프랑스은행은 지난 5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을 진행했다고 밝혔고 이탈리아은행협회는 지난 6월 유럽중앙은행(ECB)이 디지털 유로 실험을 한다면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나섰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를 비롯한 ECB의 고위 관계자들도 디지털 유로 언급을 늘리는 추세다. 유럽이 유로화(EUR)의 디지털 버전에 부쩍 관심이 늘었다. 그 내부의 이야기는 방어와 결속이라는 키워드로 축약된다. 


디지털 유로, 어디에서 시작했나


디지털 유로의 시작은 6년 전, 유럽중앙은행(ECB)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마이너스금리 정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이너스금리는 예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는 게 아니라 수수료를 걷어 개인, 기관이 저축보다 소비나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는 경기부양책이다. 기존에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하하거나 인상해 통화의 유동성을 조절했는데 마이너스금리는 금리 조절 능력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축소하는 정책으로도 평가된다. 당시 덴마크 외에 이 정책을 시도한 사례는 없었지만 유럽연합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밀어붙였다. 


이때 유럽이 마이너스금리로 시중에 푼 예금이 현금 저축이 아니라 소비와 투자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격렬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최근 1월 다보스포럼에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를 향해 “저금리로 ‘값싼 돈’이 정부와 기업, 가계에 위험한 투자를 부채질하고 저축 생활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금리가 마이너스까지 내려간 상황에서 세계 경제에 더 큰 어려움이 닥치면 중앙은행이 대응할 수단이 없다는 점도 걱정거리”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같이 마이너스금리의 효과를 증명하고 세계 각국에 비판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럽이 발견한 수단은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던 현금을 디지털화한 것으로 발행량 조절, 통화흐름 추적이 용이해 중앙은행의 권한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꼽힌다. 현금을 디지털화하면 더 이상 현금을 인출해 금고에 넣어둘 수 없기 때문에 마이너스금리가 실제로 소비와 투자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마이너스금리가 CBDC와 결합했을 때 효용은 여러 연구에서도 등장한다. 지난 3월 영국은행이 발표한 소논문은 중앙은행이 현금 사용비율이 높거나 현금 생산비용이 낮은 상태에서 마이너스금리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경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마이너스금리로 지불되는 CBDC는 이 정책이 실효하한금리(ELB)에 도달하는 것을 피하면서 경제적 성과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IMF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4가지 질문과 답변’ 기고문에서 일부 경제학자들은 CBDC가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한다고 소개했다. 전례 없는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펼치면서 세계 각국의 비판에 방어해야 했던 유럽 입장에서 CBDC는 솔깃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디지털화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제 정세도 유럽의 방어 기제를 자극했다. 중국은 CBDC 파일럿 테스트 단계에 들어섰고 미국은 공적자금 지급결제수단으로 디지털 달러를 개발, 활용하자는 논의가 확산하는 중이다. 글로벌 기업 페이스북은 연말까지 자사 디지털화폐인 리브라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급박해지는 상황에 유럽에서 나온 목소리는 결속이다. 세계 각국과 민간 기업의 행보에 대응해 유럽이 통합된 디지털화폐를 선제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수아 빌레 드 갈루 프랑스은행(BDF) 총재는 “유럽이 첫번째 CBDC를 발행해 다른 지역을 견제하려면 유럽중앙은행이 신속히 움직일 필요가 있다”면서 "최소한 도매 CBDC를 발행하는 데는 이점이 있을 것"이라고 유럽의 디지털 유로 개발을 촉구했다. 미국의 국제문제 싱크탱크 아틀란틱카운실은 미국 정부에게 CBDC 발행을 제안하는 보고서에서 유럽의 CBDC 발행 동인이 지역 간 결제시스템 통합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디지털 유로를 선점하라 


디지털 유로 연구는 개별 국가와 유럽연합 차원에서 모두 이뤄진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매용 CBDC보다는 주로 은행, 기관이 대상인 도매용 부문에서 연구를 이어가는 양상이다. 이중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국들은 디지털 유로 개발에 적극적이다. 이들 국가의 행보 이면에는 자신이 디지털 유로 개발을 주도하겠다는 야심이 있다. 



프랑스중앙은행인 프랑스은행(BDF)은 올해 새로운 기술의 잠재력을 테스트하고 금융시장의 기능과 은행 간 결제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CBDC 실험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에는 프랑스의 대형 금융사인 소시에떼제네랄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로 유로화 디지털 증권을 생성하고 유로화 기반 CBDC로 인수 비용을 결제하는 실험도 진행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이 실험으로 유로시스템이 중앙은행 디지털통화를 주도하는데 있어 프랑스가 기여할 수 있다”는 문구다. 이는 디지털 유로 발행을 프랑스가 견인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프랑스의 디지털 유로 주도 의지는 프랑수아 빌레 드 갈루 BDF 총재의 발언들에서도 나타난다. 드 갈로 총재는 지난 12월 파리금융회의에서 “프랑스는 금융회사 간 토큰화된 금융자산을 교환하고 결제하는 데 CBDC를 사용하는 실험을 하고 싶다”면서 "우리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유럽 중앙은행들의 유로시스템 작업에 기여할 것이며 유로시스템은 다음 관심사 중 하나로 'e-유로'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프랑스은행은 지난 20일 소시에떼제네랄, 엑센추어, HSBC, 유로클리어, 이즈네스, 리퀴드쉐어, 프로스퍼유에스, 세바뱅크 등 6개 다국적 기업을 CBDC 협력사로 선정하고 향후 수개월 간 6사와 함께 CBDC를 실험을 지속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프랑스의 디지털 유로 행보에 네덜란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중앙은행(DNB)이 지난 4월 발행한 ‘CBDC에 관한 보고서’는 더욱 노골적이다. 보고서는 "네덜란드는 유럽 디지털화폐 발행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유럽연합의 CBDC 외에 자체 CBDC 개발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두 국가에 비해 독일과 이탈리아 등은 직접 연구에 나서기보다는 다른 국가의 동향을 탐색하고 있다. 올라프 슐츠 독일 재무부 장관은 지난 10월 “디지털 유로 시스템은 유럽 금융 센터와 세계 금융 시스템으로의 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중국, 러시아, 미국, 기타 민간 업체에 뒤떨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지만 가시적인 행보는 미미한 수준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6월 700여개 금융기관이 소속된 이탈리아은행협회 차원에서 유럽중앙은행이 추진하는 디지털 유로 실험을 지원한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디지털 유로, 따로 또 같이


개별 국가뿐만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CB) 차원에서도 CBDC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마이너스금리정책과 함께 친디지털화폐 성향의 인물로 꼽힌다. 그는 지난 1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ECB 본부에서 취임 후 주재한 첫 통화정책회의에서 “중앙은행 디지털통화는 시민들이 일상 거래에서 직접 중앙은행 돈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면서 “ECB는 앞으로 유럽 시민과 더 넓은 경제를 위해 CBDC의 가치를 평가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에 향후 라가르드 총재를 중심으로 ECB 차원에서 디지털화폐를 개발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그는 지난 1월 프랑스 매체 챌린지와의 인터뷰에서 CBDC를 언급하며 “저렴하면서 속도도 빠른 지불 수단에 대한 수요가 있다”면서 “변화의 관찰자로 남아 있기보다는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의중을 반영하듯 ECB는 지난 1월 영국, 스위스, 스웨덴, 캐나다, 일본 5개국 중앙은행 및 국제결제은행(BIS)과 CBDC를 연구하는 실무그룹에도 참여했다. 


최근 ECB 디지털 유로 논의에서는 도매용에 이어 소매용에 대한 논의도 시작했다. 이브 메르쉬 ECB 집행이사회 이사 및 감독이사회 부회장은 5월 연설에서 “도매용 CBDC는 알려진 것처럼 사업성이 높지만 소매용 CBDC는 이를 넘어서 게임 체인저로 떠올랐다”면서 “발행주체에 대한 법적 근거, 익명성, 자금세탁 등 다양한 소매용 CBDC의 옵션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 유로가 점차 가시화되는 양상이다. 


[김세진 기자]


<관련 기사> [심층분석] 스웨덴 ‘현금 없는 사회’ 완충재로 ‘디지털현금’ 주목

[심층분석] 미국 디지털 달러, 어디까지 왔나


*참고자료

Bank of England(2020),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Opportunities, challenges and design”.

Christine Lagarde(2019), “Hearing at the Committee on Economic and Monetary Affairs of the European Parliament”, European Central Bank.

De Nederlandsche Bank(2020), “DNBulletin: Digital currency issued by central banks can protect public interests in payment systems”.

European Central Bank(2020), “Central bank group to assess potential cases for central bank digital currencies”.

Jorge Valero(2020), “IMF warns of the risk of central banks’ ‘cheap money’”, EURACTIV.

Nikhil Raghuveera(2020), “Design choices of Central Bank Digital Currencies will transform digital payments and geopolitics”, Atlantic Council.

Pierre-Henri de Menthon and Sabine Syfuss-Arnaud(2020), “Christine Lagarde: Interview in ‘Challenges’ magazine”, Bank of International Settlement.

Reuters(2019), “ECB needs to move fast on ‘e-euro’ digital currency-French central banker”.

Sandali Hnadagama(2020), Italian Banks Are Ready to Trial a Digital Euro, Coindesk.

Tobias Adrian and Tommaso Mancini-Griffoli(2019), “Central Bank Digital Currencies: 4 Questions and Answers”, IMF Blog.

Yves Mersch(2020), “An ECB digital currency-a flight of fancy?”, European Central Bank.

정혜림 외(2020), “주요국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대응 현황”, 한국은행.

한국은행(2020), “해외 중앙은행의 CBDC 추진 현황(기술검토 진행상황을 中心으로)”, 동연구소.

BANQUE DE FRANCE(2020), “Avancement de la démarche d’expérimentations de monnaie digitale de banque centrale lancée par la Banque de France”.

디스트리트 커뮤니티 광고
북마크
좋아요 : 0
공유
https://dstreet.io/news/view-detail?id=N20200730101007886602
URL복사
댓글 0
댓글쓰기
댓글 쓰기
딸람 광고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