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금융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수장으로 게리 겐슬러가 유력시되고 있다. SEC는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리플(XRP) 소송 등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의 굵직한 의제를 다루고 있는 증권 규제기관이다. 임명이 유력시되고 있는 겐슬러는 암호화폐 관련 혁신 촉진과 투자자보호에 관한 발언을 동시에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향후 그가 이끄는 SEC가 암호화폐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를 두고 회의론과 긍정론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MIT에서 블록체인 기술 가르친 석학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차기 위원장에 게리 겐슬러가 유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SEC 위원장 임명을 두고 이뤄진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투표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명한 게리 겐슬러가 찬성 14표, 반대 10표로 통과됐다.
이번에 SEC 위원장으로 지명된 겐슬러는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인수합병(M&A) 부문 파트너를 거쳐 지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을 역임한 인사다. 골드만삭스 재직 당시 정부의 규제 철폐를 강조했지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CFTC 위원장 재직 당시에는 파생상품 규제 강화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집권했던 2019년에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슬론경영대학원에서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화폐를 가르쳤다. MIT 내 업계와 학계가 함께 글로벌 핀테크 서비스 등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핀테크@CSAI’의 공동책임자와 함께 MIT 미디어랩의 ‘디지털화폐 이니셔티브’에서도 고문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지난 11월부터 바이든 인수위원회에서 금융산업관리감독(oversight) 계획을 이끌면서 바이든 대통령과 연을 맺었다.
‘모호한’ 겐슬러에 암호화폐 규제 방향 불투명
게리 겐슬러의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입장은 아직 특정한 호불호 없이 모호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그가 SEC 수장으로 취임할 경우 향후 암호화폐 규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정책 방향이 전향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동시에 나온다.
겐슬러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일단 회의적이다. 그는 최근 암호화폐는 혁신의 촉매제라는 입장과 함께 규제의 필요성을 동시에 밝히면서 투자자들의 우려를 샀다. 겐슬러는 지난 2일 인준 청문회에 참석해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는 결제 및 금융포용성 부문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함과 동시에 투자자 보호 부문에서도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면서 “위원장에 임명되면 혁신 촉진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이날 비트코인(BTC) 가격은 4%가량 떨어졌다.
반면 SEC 발 암호화폐 규제가 산업 활성화를 이끄는 방향으로 나올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SEC 내 친암호화폐 성향으로 ‘크립토 맘’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헤스터 피어스 위원은 게리 겐슬러가 SEC 위원장에 정식 취임할 경우 암호화폐 업계에 “좋은 일”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씽킹크립토팟캐스트와 인터뷰에서 “겐슬러는 MIT 재직 당시 블록체인 기술에 열광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면서 “블록체인 산업의 긍정적인 잠재력뿐만 아니라 산업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명확한 규제의 필요성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SEC 위원장이 누가 되든 조직은 5인 위원회의 업무적 연속성에 기반해 돌아가기 때문에 (겐슬러의 합류로)규제 어젠다는 크게 바뀔 수 있어도 위원회의 업무 자체는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SEC는 현재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리플(XRP) 소송 등 업계의 굵직한 안건들을 관장하고 있다. 비트코인 ETF는 암호화폐 업계에서 기관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대형 호재로 평가받지만 번번히 SEC로부터 ‘사기 및 시장 조작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승인받지 못했다. 리플(XRP)은 SEC로부터 증권법 위반 혐의로 소송 당하면서 가격이 크게 하락한 상황이다.
비트코인 ETF 승인을 반대했던 제이 클레이튼 전 SEC 위원장과 리플 소송을 주도한 마크 버거 SEC 집행부이사 대행은 정권이 교체되면서 사임했다. 향후 SEC를 이끌 신임 위원장인 게리 겐슬러의 임명 여부는 상원 전체 최종 투표를 통해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김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