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By 김도윤   Posted: 2020-12-07

자회사 라인을 중심으로 블록체인 사업을 전개해왔던 네이버가 최근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DSRV LABS와 메디블록 두 곳이다. 지금까지 네이버는 인공지능 · 자율주행 · 빅데이터 등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꾸준히 투자를 해왔지만, 블록체인 기업 투자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관심이 쏠린다.

이번 투자는 D2SF 주도로 이뤄졌다. D2SF는 네이버 사내 벤처 캐피탈 조직(CVC)으로, 기술 기반 초기 스타트업 투자 및 육성을 담당하고 있다. 2015년 출범한 이후 현재까지 60여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투자 이후에는 네이버와 스타트업 간 협업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기 위해서다. 양상환 D2SF 리더는 “네이버와 스타트업의 협업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게 D2SF의 중요한 미션”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네이버는 투자한 기업 중 절반 이상의 스타트업과 협업을 진행할 정도로 포트폴리오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D2SF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한다. 기술 창업 생태계의 규모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모두가 얻을 수 있는 과실의 크기도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D2SF는 네이버 투자 여부와 상관없이 기술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출처 = 매경DB>

네이버는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까? 양상환 리더(사진)를 만나 D2SF는 어떤 조직이고, 블록체인 기업에 관심을 가진 배경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 네이버 D2SF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이버 D2SF는 2015년에 설립된 벤처 캐피탈 형태의 네이버 내부 조직입니다. 별도의 회사나 법인을 만든 것은 아니고요. 초기 기술 스타트업에 전략적 투자를 집행하고, 육성하는 일을 하는 기업주도형 벤처 캐피탈(CVC) 조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네이버는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나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 전략적 투자자로서 전략적 이익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투자를 하면 장단기적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형태는 여러 가지입니다. 기술 협력일 수도 있고, 네이버가 스타트업의 고객이 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반대로 스타트업이 네이버의 고객이 되는 경우도 있겠죠. 이처럼 스타트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이끌어내는 것이 저희 조직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둘째, 기술 스타트업 생태계가 더 커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기술 스타트업 풀이 작습니다. 풀이 더 커지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얻을 수 있는 과실의 크기도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술 스타트업이 더 많이 탄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D2SF는 기술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고자 네이버의 투자 여부와 상관없이 강남역 부근의 업무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오피스에 입주한 기업은 스타트업이 개발 중인 기술 및 최근 기술 트렌드를 소개하는 ‘테크 토크 세미나’와 간식이나 식사를 함께 하는 ‘스낵 타임 & 올 핸즈 미팅’등을 통해 같은 직군의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도 갖는다.

– D2SF는 어떤 기술을 선호하나요?

“단기적으로는 네이버와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다면 모두 투자 범위에 들어갑니다. 저희도 네이버와 네이버 독립 기업(CIC)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와 CIC가 어떤 기술력, 사업에 관심이 있는지 말이죠.

문제는 장기적인 시너지 효과를 추구할 때인데요.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해요. 최근 4~5년 행적을 보면 네이버가 기술적으로 엄청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기술 기업으로 탈바꿈했는데요. 특히 CIC가 분사를 하면서 각자 사업을 전개하는 형태는 4~5년 전만 해도 생각하지 못했던 움직임입니다. 5~10년 후에 필요한 기술은 현업에 있는 누구도 명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어요. 상상력을 동원해야 어떤 기술에 투자할지 판단할 수 있죠. 이런 부분은 리스크 감수가 필요합니다.

단기적인 부분은 협력 관계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그런 기술을 찾기는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지나치다 싶은 곳에도 투자하는 것이 저희 미션입니다. 4~5년 전에는 인공지능(AI)에 상상력을 동원해 집중 투자했어요. 전체 포트폴리오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는데요. 이제 새로운 시장이 열리려 하고 있죠.”

– 최근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데요. 블록체인 기술은 어떻게 보세요?

“저희가 매년 1000팀에서 1500팀의 기술 스타트업을 만납니다. 지금까지 한 6000~7000팀 정도 만났는데요. 이렇게 만나다 보면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직관이 생깁니다.

기술에는 사이클이 있어요. 어떤 기술이 나오면 많은 사람이 그 기술을 찬양하고, 개발해 시장에 내놓으면서 혁신이라 주장하는 과정이 존재하죠. AI와 가상현실(VR)이 그랬고, 블록체인도 가트너의 하이프 사이클을 따르고 있는 것 같아요.

초기에 시장의 기대치가 높을 때는 기술 상용화 가능성이 검증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높습니다. 실패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이 잠잠해지고, 수면 아래에서 성숙기를 거치는 동안 기술 상용화 가능성에 근접하게 되죠. 블록체인 기술도 이런 성숙기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 지금까지 블록체인 기업에는 거의 투자하지 않았어요.

“저희도 블록체인 스타트업 투자를 검토하기 위해 많은 팀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가 처한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명쾌한 답변을 준 팀은 생각보다 적었어요. 대부분 메인넷 개발, 암호화폐 발행, 토큰 공개(ICO) 쪽으로만 경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사람들이 너무 탈중앙화 이념에 몰입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창업하는 사람에게는 유연성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철학적인 명제가 기업의 핵심이 되는 건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은 중앙이 되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부분이 납득되지 않았어요.”

–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 주목해야 할까요?

“제가 블록체인 전문가는 아니어서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이 기술의 특성이나 적용성에 관한 논의는 수년간 많이 다뤄왔기 때문에 차치하고요. 블록체인 기술이 언제 어떻게 어떤 서비스로 우리 일상에 자리 잡게 될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블록체인은 인프라 성격의 기술이다 보니 세상을 바꿀 기술, 중앙집권적 기득권을 해체할 기술로 인식됐어요. 그래서 실제 기술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하기도 전에 거대 담론으로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난 20여 년간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돌이켜보면, 그중 누구도 처음부터 ‘우리가 플랫폼이 되겠어’라는 목표로 제품을 들고 나오진 않았어요. 시장 문제를 날카롭게 정의하고 해결하는 데서부터 출발해 눈덩이를 굴려왔죠.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기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경제적 이익을 거둘 때 비로소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웹 시대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기는 HTML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졌을 때가 아닙니다. HTML을 전혀 몰라도 HTML 기반 웹 사이트를 통해 경제활동을 쉽게 할 수 있게 됐을 때 성장했죠. 모바일 시대도 그랬고, 지금 통과하고 있는 AI와 앞으로 올 블록체인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 사용자가 블록체인이 적용됐는지 모르고 경제활동을 하는 서비스가 필요하겠네요.

“그렇죠. 저는 분산 컴퓨팅, 스마트 컨트랙트, 노드, 디파이… 이런 용어를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도 블록체인 기술로 경제적 이익을 거둘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부캐(부캐릭터)의 경제학’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디지털 자산 획득이 경제적 이익과 연결되는 생태계가 많이 생기는 것이 시발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게임 같은 온라인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가장 잘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고요. 그렇게 본다면, 블록체인 기술은 ‘부캐 시대를 이끄는 기술’로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 얼마 전 D2SF는 DSRV LABS에 투자했습니다. 네이버가 최초로 투자한 블록체인 스타트업인데요.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껴 투자하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DSRV LABS는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해킹 발생 시 거래를 무효화시키는 기술을 개발했고, 테라 · 셀로 · 코다 등 다수의 메인넷에서 뛰어난 검증자(validator)로도 주목을 받는 팀입니다. DSRV는 시장에서 해결이 필요한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판단했어요. 또 많은 공동 창업자 그룹이 있는데요. 이들끼리 유대감이 엄청납니다. 처음에는 줌(ZOOM)으로 비대면 미팅을 했는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즐거웠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도중에 피봇팅(pivoting)을 할 가능성은 있지만, 저 정도로 몰입하고 유쾌한 에너지를 가진 분들이 모여 있는 그룹이라면 문제를 잘 풀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이어 양상환 리더는 블록체인 기업에 투자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도 검토 중인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여럿 있다면서. 그로부터 며칠 후, 양상환 리더는 헬스케어 블록체인 기업 메디블록에 투자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는 “의료 분야는 절차가 파편화돼 있고 업무 전문성이 강해 현장에 대한 이해 없이는 변화를 만들기 어려웠던 영역인데, 메디블록은 산업에 특화된 기술 및 사업 전문성을 갖춰 사업 전반에 혁신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고 투자 배경을 밝혔다.

– AI에 VR, 블록체인까지… 많은 기술이 생겨나고 있는데 모든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투자를 검토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D2SF는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기술 스펙트럼은 점점 넓어지고 있고, 기술 생명주기도 빨라진 세상을 살다 보니 저희가 모두 커버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그래서 네이버 내부의 전문가 풀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네이버에 IT와 관련된 각 기술 영역의 전문가가 많이 계시기 때문에 저희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합니다. 기꺼이 참여해주시는 분도 많고요. 평소에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시각이나 임팩트를 공유하면서 각각의 가치를 교환하는 형태로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전문가 분들의 반응은 긍정적입니다. D2SF가 만나자고 한 팀은 흥미로운 팀이라는 인식이 생겼어요. ‘이런 시도도 가능하구나’ 창업자로부터 자극을 받게 되면 네이버에서도 좋은 기술 역량을 갖고 있는 팀과 협업하고 싶은 욕구가 더 크게 생기더라고요.”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유니콘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고 다양한 특성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니콘은 큰 내수시장을 갖고 있고, 자본의 집적도가 높은 나라에서 주장하는 개념입니다. 이런 단어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배하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유니콘에 집착하기 보다 100억, 1000억 가치의 회사가 많아지는 것이 기술 창업 생태계에는 더 긍정적입니다. 기술 스타트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배달의 민족이나 야놀자 같은 기업보다 더 적은 금액에서도 빠르게 엑싯(exit) 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고 다양하게 있어요. 국내와 해외 모두 그렇습니다. 오히려 스타트업은 인수합병(M&A)이 잘 안 된다는 문제 의식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엑싯 자체를 많은 빈도로 할 수 있으니까요. 100억, 1000억 가치의 기업을 많이 만들자. 빨리 창업하고 성장해서 엑싯하자. 이런 메커니즘이 돼야 합니다.

창업은 어렵고, 성공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유니콘 기업이 돼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면 다른 길이 만들어질 수 있는 곳이 기술 창업 생태계입니다. 기술 창업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도전하면 도와줄 수 있는 플레이어가 많습니다. 6년 동안 많이 생겼어요. 지금은 기술력은 있지만 다른 부분이 부족한 팀이 도전하기에 어느 때보다 좋은 환경이 조성돼 있습니다. 기술 창업을 고려하는 분이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도전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도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