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콘텐츠로 게이머와 함께 크는 게임, 블록체인으로 만든다” 플라네타리움

By 김도윤   Posted: 2020-07-29

“스타크래프트 게임에는 ‘맵 에디터’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게이머의 취향에 맞게 맵을 만들거나 유즈맵으로 다양한 게임모드를 구현할 수 있죠. 앞으로의 게임도 이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게이머가 직접 2차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고 게임 성장에 기여하는 형태로 말입니다.”

 

최근 플라네타리움 팀에 합류한 김재석 공동 대표가 힘주어 말했다. 2차 콘텐츠는 게임의 재미를 더해주는 조미료와 같다며. 그는 “게임의 발전을 위해서는 게이머도 콘텐츠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게이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임이 나온다는 것.

 

이어 김재석 대표는 리그오브레전드와 마인크래프트 이야기를 꺼냈다. 리그오브레전드는 워크래프트3의 커스텀 유즈맵 도타(DOTA)로 시작해 전 세계를 휩쓴 게임이다. 원작 게임보다 유명해진 2차 창작물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마인크래프트도 다양한 블록을 활용해 가상의 세계를 건설하는 샌드박스 게임으로, 2차 콘텐츠가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다중접속(MMO) 장르는 2차 콘텐츠를 만들기가 어려워요.”

 

옆에 있던 서기준 공동 대표가 말을 이었다. 게이머가 코드를 수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그는 MMO 게임을 오픈소스로 운영하기에는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특정 게이머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게임을 조작할 위험이 있어서다. 서기준 대표는 “게임사는 데이터 위·변조를 막기 위해 서버를 직접 관리하고 외부인이 코드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서기준 대표는 이제 오픈소스 기반 MMO 게임을 만들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덕분이다. 블록체인은 데이터 위·변조를 막기에 유리한 기술로 알려져 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데이터 위·변조 걱정 없이 대규모 게임 경제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소스도 오픈돼 있어 게이머의 2차 콘텐츠 제작도 가능하다고. 플라네타리움은 이런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게임 엔진 ‘립플래닛’과 탈중앙 MMO 게임 ‘나인 크로니클’을 개발하고 있다.

 


플라네타리움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자세히 듣고자 서기준(사진 오른쪽) · 김재석(사진 왼쪽) 두 대표를 만났다. 비가 하염없이 내리던 어느 여름 날이었다. 가볍게 대화를 나누다 립플래닛 엔진과 나인 크로니클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변이 오갔다.

 

– 립플래닛은 어떤 게임 엔진인가요?

“일반적으로 게임 엔진은 그래픽, 사운드,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설계 등을 통합한 게임 개발 소프트웨어를 일컫는데요. 립플래닛은 각 게임에 특화된 블록체인 플랫폼을 개발하는 툴킷(Toolkit)으로, 게임 스토리지 및 네트워킹에 특화된 엔진입니다. 멀티플레이 게임에서 사용될 네트워킹, 스토리지, 합의 알고리즘 설계 등을 좀더 쉽고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

 

립플래닛 엔진은 이더리움이나 이오스 같은 기존의 블록체인 플랫폼을 활용하지 않는다. 대신 각 게임마다 별도의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를 제공한다. 개별 게임의 특성에 맞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어떤 게임을 만들 수 있나요?

“서버리스 멀티플레이 게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서버리스 게임은 서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게이머끼리 데이터를 분산해서 저장해요. 모두가 서버 역할을 하는 개인 간(P2P) 네트워크로 게임이 구동되는 거죠. 그런데 기존 서버리스 게임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데이터 위·변조가 쉽다는 거죠. 한 명이 데이터를 조작해도 혼선이 생기기 때문에 대규모 게임 경제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이때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되는데요. 데이터 위·변조를 막음으로써 수많은 사람이 멀티플레이 게임을 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또 게이머가 2차 콘텐츠를 창작할 토대를 제공합니다. 게임을 오픈소스로 배포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2차 창작을 통해 게임을 확장해 나갈 수 있죠.”

 

– 퀄리티 측면에서 보면 게임 콘텐츠는 게임사가 직접 만드는 편이 나아 보이는데요.

“초기에는 게임사가 주도해서 신규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겠죠. 게이머가 신규 콘텐츠를 만들 동기도 없고요. 하지만 게임이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2차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게임 업계를 보면 2차 콘텐츠가 오리지널 콘텐츠의 수십 배 규모로 발전한 사례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리그오브레전드를 들 수 있어요. 리그오브레전드는 워크래프트3의 커스텀 유즈맵 ‘도타’로 시작했고, 지금은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2차 콘텐츠를 통해 콘텐츠 부족 현상을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게임사가 몇 개월 동안 콘텐츠를 만들어도 게이머가 며칠 만에 끝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요. 사용자가 콘텐츠를 직접 창출한다면 게임의 수명을 더 길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 게이머가 2차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역량이 필요한가요?

“2차 창작의 범위는 정말 넓습니다. 꼭 거창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요. 자기 캐릭터의 디자인을 바꾸는 것도 2차 창작에 해당합니다. 캐릭터의 디자인을 바꾸는 정도의 작업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게임 기능을 구현하고자 한다면 게임 프로그래머 급은 되어야 하겠죠. 그렇다고 일반 게이머가 새로운 기능을 만들 수 없다는 건 아닙니다. 마인크래프트를 보면 10대 청소년들도 상당히 복잡한 수준의 2차 창작을 하고 있으니까요. 2차 창작의 장벽도 점점 낮아질 것이고요.”

 

– 립플래닛 엔진의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인가요?

“저희는 오픈소스 기업에서 많이 활용하는 듀얼 라이선스 정책을 적용하려고 해요. 오픈소스로 게임을 만들 경우에는 무료로 립플래닛 엔진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클로즈드 소스로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개발사는 커머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계약을 체결할 때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거나, 게임 수익의 일부를 분배하는 식으로요. 꼭 현금이 아니더라도, 게임에서 유통되는 아이템을 공유하는 것과 같이 다양한 옵션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또 커머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개발사는 저희와 협력해 게임을 설계하고 출시할 수 있습니다.”

 

– 오픈소스 게임과 클로즈드 소스 게임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시지요.

“오픈소스 게임은 코드가 공개돼 있어요. 다른 사람도 게임에 참여해서 콘텐츠를 수정할 수 있죠. 저희가 ‘나인 크로니클’ 게임도 개발하고 있는데요. 오픈소스 기반 게임이어서 다른 사람이 코드나 그래픽 같은 것을 변형할 수 있습니다.

 

반면 클로즈드 소스 게임은 코드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습니다. 게이머에게는 실행파일만 배포돼요. 보안 및 저작권 보호를 위해서죠. 보통 MMO 장르 게임은 클로즈드 소스입니다. 사실 대작 게임을 처음부터 오픈소스로 개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보안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외부에 공개하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커머셜 라이선스 계약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 립플래닛 엔진뿐만 아니라 ‘나인 크로니클’이라는 게임도 같이 만들고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립플래닛 엔진의 레퍼런스로 삼을 게임이 필요했어요. 게임사가 상업 게임에 활용된 적 없는 기술을 선택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어서요. 게임 엔진의 역사를 보면 레퍼런스 게임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이드소프트의 둠 엔진과 퀘이크 엔진이 게임 엔진의 시초로 꼽히는데요. 두 엔진 모두 레퍼런스 게임을 바탕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슈팅게임(FPS) ‘둠’과 ‘퀘이크’를 통해서 말이죠. 현재 게임 엔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에픽게임즈의 언리얼 엔진도 FPS 게임 언리얼을 바탕으로 성장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직접 립플래닛 엔진을 이용해 어떤 게임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나인 크로니클은 어떤 게임인가요?

“나인 크로니클은 MMO 장르의 방치형 게임입니다. 게이머가 별도의 조작을 하지 않아도 캐릭터가 스스로 성장하지요. 게임 세계관은 북유럽 신화에 기반하고요. 고양이 영혼이 신들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캐릭터가 던전에서 사냥하거나 특정 장비를 몸에 지니는 식으로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스테이지가 완료되는데요. 스테이지가 지날수록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는 스타일의 작품입니다.

 

나인 크로니클의 가장 큰 특징은 탈중앙화 돼 있다는 거예요. P2P 네트워크로 게임이 구동되기 때문에 저희 회사가 없어진다 해도 사람들은 나인 크로니클 게임을 계속 즐길 수 있습니다.”

 

– 나인 크로니클이 P2P 네트워크로 구동되면 게이머에게 부담은 없나요? 많은 게이머가 이용할수록 컴퓨팅 자원 소모량도 많아질 텐데요.

“가벼운 게임일수록 많은 사용자가 플레이하기에 유리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방치형 게임을 선택한 것도 있어요. 방치형 게임은 관리해야 할 데이터가 많지 않아 컴퓨팅 자원 소모 부담이 적거든요. 또 게임의 모든 내용이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건 아닙니다. 다른 게이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만 블록체인에 기록하려고 해요. 플레이어 간 승패, 랭킹, 아이템 거래 내역과 같이 증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말이죠. 이 정도면 많은 사람이 게임해도 무리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 게임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활동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현재는 다른 게임사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나인 크로니클이 자연스럽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비소프트는 나인 크로니클의 노드로 참여해 전체 네트워크 상태가 유지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로 했는데요. 이런 소식이 게이머들 사이에 퍼지고 있습니다. 게임을 출시할 무렵이 되면 페이스북 같은 고효율 광고 채널을 많이 활용하려고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게이머의 2차 창작이 활성화될 것이기 때문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게임이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게이머는 자신이 창작한 콘텐츠를 여러 사람에게 알리려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런 2차 창작 콘텐츠를 홍보하기에 이상적인 공간은 역시 커뮤니티죠.”

 

– 나인 크로니클의 과금 모델은 무엇인가요?

“여느 게임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게임의 핵심 자산(아이템)을 만들고, 2년에 걸쳐 판매할 계획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저희는 게임의 핵심 자산 중 일부를 게임 출시 전에 미리 판매했다는 거죠. 이를 통해 3억 원의 매출을 거뒀고, 사전 제작비를 회수했습니다. 보통은 게임이 출시된 후에야 제작비 회수 여부를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게임 비즈니스의 위험도가 높은데요. 저희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비전을 제시하고, 공감하는 사람에게 게임의 핵심 자산을 미리 판매하는 시도를 해봤습니다. 나인 크로니클이 성공한다면, 립플래닛 기반의 유저참여형 게임을 만드는 다른 게임사에게도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저희도 나인 크로니클 네트워크에 참여해서 기여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개발자와 경쟁해서 게이머에게 더 좋은 콘텐츠를 제시해야 하는 거죠. 아무래도 오픈소스 기반 탈중앙 네트워크에서 구동되는 게임이니까요.”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우선 나인 크로니클 게임을 9월에 출시할 예정입니다. 이에 맞춰 게이머가 즐길 수 있는 여러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사용자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데도 힘쓰려 해요. 게이머가 함께 나인 크로니클 게임을 즐기고, 새로운 게임 콘텐츠도 만들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거죠. 현재는 여러 게임 스튜디오와 협업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립플래닛 기반의 다양한 게임이 나올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김도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