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익명 거래 원천차단…탈세·자금세탁 막는다

By 매일경제   Posted: 2021-12-09

“앞으로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자산을 전송할 때 ‘누가 보냈는지, 누가 받았는지’ 기록이 남습니다. 은행에서 송금할 때 송금인과 수신인이 파악되는 것과 같죠.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가상자산 전송은 ‘인허가를 받은 거래소’ 사이에서만 가능할 겁니다.”

지갑 주소를 입력한다. 전송하기를 누른다. 자금 전송을 위한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거래소 간 신원 확인 절차가 진행된다. 모든 게 확인된 후에야 전송이 끝난다. 차명훈 코인원 대표가 시연한 트래블룰 솔루션 ‘코드(CODE)’ 작동 모습이다. 기존에 비해 2~3단계를 더 거쳐야 하지만,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몇 초의 짧은 시간에 거래소와 거래소 간 중요한 고객 정보가 오간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 국적, 실명 확인 정보 등이다.

8일 기준 트래블룰을 적용해야 하는 거래소는 총 14곳이다. 정부 인가 기준을 충족해 원화 거래가 가능한 4대 거래소(업비트, 코빗, 코인원, 빗썸) 외에 비트코인으로 바꿔 거래할 수 있는 플라이빗, 지닥, 고팍스, 비둘기지갑, 프로비트, 포블게이트, 후오비코리아, 코어닥스, KODA, KDAC 등이다.

거래 기록이 남기 때문에 탈세와 자금세탁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세원이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돈(가상자산)이 오간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특히 당국이 요청하면 언제든 이 같은 자료를 제공할 수 있어 투자환경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날 빗썸·코인원·코빗의 합작법인 ‘코드’는 간담회를 열고 공동 개발한 트래블룰 솔루션을 공개했다. 이 솔루션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규정을 따른다. 국내에서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라 내년 3월 25일부터 모든 거래소가 트래블룰을 준수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거래소는 최대 영업정지까지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자금세탁 사각지대였던 가상자산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첫 단추다. 세계적으로 트래블룰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블록체인을 활용한 트래블룰 솔루션을 선보인 것은 세계 최초다.

지금까지 가상자산 전송을 위해서는 지갑 주소만 필요했다. 숫자와 알파벳 10개 이상 조합으로 이뤄진 암호 같은 긴 지갑 주소만 알면 됐다. 하지만 내년 3월부터 트래블룰이 적용되면 거래소들은 지갑 소유자 신원정보까지 확보해야 한다. 이 정보는 거래소들 간에 공유하면서 저장해야 한다.

국내에서 원화 거래를 인가받은 4대 거래소는 이미 특금법에 따라 고객확인절차(KYC)를 거쳤다. 통신사 본인 인증, 신분증 인증, 거주지 등록, 실명 입출금 계좌 확인 절차 등을 진행했다. 트래블룰이 적용되면 신원인증 정보를 거래소 간에 주고받게 된다. 송금자가 거래소 송금 화면에서 송수신자 정보를 입력한 후 가상자산을 보내면 송금 사업자는 해당 정보를 수신 사업자에게 전달한다.

지난 9월 빗썸과 코인원, 코빗은 금융당국 신고 수리 후 60일 안에 트래블룰을 구축한다는 조건으로 NH농협은행과 신한은행에서 실명계정 확인서를 받았다. 코드는 포스텍 출신인 차 대표를 중심으로 포스텍과 산학 협력을 맺고 기술 개발을 진행해왔다.

이날 공개된 코드 특징은 블록체인 기반 솔루션이라는 점이다. FATF 규정에 따라 트래블룰 솔루션 필요성이 전 세계적으로 커지면서 이를 활용한 사업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코드는 ‘R3코다’라는 블록체인을 활용했다. 80여 개 금융회사가 참여하고 있고, 개인정보 보호 등에 특화된 블록체인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대중이 참여하지 않고 믿을 만한 금융회사들만 참여해 정보를 처리한다.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는 독자적인 트래블룰 솔루션 ‘베리파이바스프(VerifyVASP)’를 구축 중이다. 애초 코드 설립에 국내 4대 거래소가 모두 참여하기로 했지만 두나무가 중간에 탈퇴를 선언했다. 두나무는 이미 해외에서 송수신 사업 경험이 있는 람다256의 기술을 활용한다. 지난 10월부터 참여 회사들을 모집 중이다.

일각에서는 트래블룰이 오히려 거래 안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래블룰이 적용되면 금융자산 정보가 유출될 수 있어 금융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가상자산의 안전성은 거래 정보를 독점하는 중심화된 금융사가 없다는 점에서 오기 때문이다.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는 “자금세탁에 있어 가장 철저한 국가인 미국도 트래블룰을 적용한 거래소가 없는 상황”이라며 “트래블룰에 따른 이 솔루션으로 계좌가 특정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우려된다”고 말했다.

■ <용어 설명>

▷ 트래블룰 : 거래소 간에 자산을 주고받을 때 보내는 사람의 이름과 받는 사람의 고객 정보 등까지 파악해 같이 보내도록 하는 규정이다. 누가 송금하고 받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자금세탁’을 방지할 수 있다.

[최근도 기자 / 명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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