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성 자극”…당국 ‘돈 버는게임’ 퇴출 밀어붙여

By 매일경제   Posted: 2021-12-27

◆ P2E發 대혼란 ② / ‘폰지 사기’냐 ‘기술적 혁신’이냐 ◆

2004년 대한민국을 도박 광풍에 몰아넣은 ‘바다이야기’가 최근 다시 소환됐다. 게임사들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돈 버는(P2E) 게임’의 국내 서비스 허용을 두고 혼란이 빚어지면서부터다. P2E게임을 놓고 사행성과 정보의 불투명성 등을 우려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규제당국과 신사업으로 평가하는 일부 게임사가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기존 수익 모델이 한계에 다다랐고 신기술이 사업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게임 업계가 처한 환경이 18년 전과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온라인 게임에 밀려 수익원이 감소한 아케이드 게임사가 돌파구로 내놓은 게 바다이야기다. 학계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에선 “게임이 돈과 엮이면 극단적인 중독·사행성 게임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보수적인 접근을 주문하고 나섰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 최대 게임 플랫폼이 선제적으로 블록체인과 대체불가능토큰(NFT)을 기반으로 한 P2E게임 차단에 나서 주목된다.

실제로 활성 이용자 1억2000만명을 보유한 세계 최대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Steam)’은 지난 10월 NFT와 가상화폐 기술을 적용한 게임의 입점을 원천 차단하고 가상화폐 교환 행위를 금지시켰다. 사실상 P2E게임이 플랫폼에서 등록되는 것은 물론 배포될 수 없도록 막은 셈이다. 또 블록체인 게임 개발사를 연이어 퇴출시켰다.

해외에선 P2E게임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돈을 버는 게임(Play to Earn)’이 ‘돈을 써서 버는 게임(Pay to Earn)’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의 본질인 ‘재미와 놀이’ 문화를 흐려 일종의 노동이 되면서 결국 게임 산업 수명을 단축시킬 것이란 지적이다. 필 스펜서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은 “공격적인 NFT 게임에 대해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게임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수익이 나는 구조를 꼬집어 P2E게임을 ‘폰지 사기’에 빗대기도 한다. 어느 한 사용자가 돈을 벌었다면 누군가는 돈을 지불해야 하는 구조라는 것. 중국 최대 게임 플랫폼 XD네트워크의 황이멍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성인을 위한 NFT 기반 P2E게임은 폰지 사기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가장 유명한 P2E게임인 엑시인피니티는 초기 진입자들이 게임을 시작하려면 펫(엑시) 3마리가 필수로 있어야 하는데, 별도 수수료(가스비)를 지불해야 한다. 펫 1마리 가격은 0.1이더리움(약 48만원)에 달한다. 사실상 게임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요즘 기준으로 15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입장료를 꾸준히 내고 들어오는 이용자가 없으면 결국 코인 가격이 폭락하는 구조라 지속가능성에도 의구심을 제기한다. 최근 엑시인피니티 코인 가치는 5개월 만에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다수 이용자가 게임 코인을 현금화하는 탓에 코인 가격이 급락한 것이다. 엑시인피니티는 한때 이용자들이 월평균 70만~100만원의 수익을 올리면서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생계 수단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코인 가격이 폭락하면서 이들의 소득도 최저임금 아래로 떨어졌다. 국내 첫 P2E게임 무돌삼국지의 코인 가격은 한때 200원까지 치솟았다가 최근엔 6원 수준까지 폭락했다. 이 게임은 한때 “30분에 1만원을 벌 수 있다”고 입소문을 타면서 20대는 물론 10대 청소년까지 대거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사가 마치 ‘중앙은행’처럼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들이 운영하는 게임 내 가상자산이 증발하거나 입출금 서비스가 갑작스럽게 중단되면 피해가 고스란히 사용자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당국도 강경한 입장이다. 김규철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은 “기업이 유행처럼 NFT를 몰고 가지만 게임위까지 유행을 따라갈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중앙대 교수)은 “P2E와 NFT 등이 합법화되는 순간 소셜카지노 같은 사행성 게임들이 밀고 들어와 ‘환전성’을 미끼로 제2의 바다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황순민 기자 / 김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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