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인이라면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정보기술(IT) 용어에 당황하다가도 이내 상식인 척 받아들이는 과정에 익숙해져야 한다. 최근 등장한 용어로는 메타버스와 NFT(대체불가능토큰)가 있다. 메타버스는 싸이월드나 동물의 숲 게임이 진화된 형태를 연상하면서 넘어갔지만 솔직히 NFT에 이르러서는 필자도 머리를 긁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디지털 파일에 소유권을 부여한다는 기술의 의미가 처음엔 잘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나날들: 첫 5000일’이란 NFT 미술작품이 우리 돈 790억원에 낙찰되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약 14년 동안 매일 그린 5000개의 디지털 아트를 모은 것이다. 독특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실물도 없고 인터넷에서 누구든지 사본을 내려받을 수 있는 그림파일에 불과하다. 돈이 넘치는 누군가의 만용일 수도 있다고 봤지만 NFT의 인기는 시작에 불과했다. 6월에는 #7523 크립토펑크가 140억원에 팔렸다. 꼰대 아저씨의 감상으로는 유치원생이 대충 그린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한 듯한 그림이고 그나마 1만개 중의 하나일 뿐인데 말이다.
디지털 아트에서 시작된 열풍은 스포츠선수들과 음악계, 연예계는 물론 게임업계까지 확산되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수억 원에 팔리는 디지털 아트가 나오고, 인기 BJ의 아바타 NFT가 수천만 원에 팔렸다든가, NFT 게임 출시 계획을 밝힌 게임사 주가가 급상승했다든가 하는 뉴스가 일상화되었다. 증권 유튜브나 출판계에는 NFT에 대한 투자조언이 쏟아지고 있다.
NFT의 기술적 측면을 다루는 것은 필자의 역량으로 보나 이 칼럼의 길이로 보나 무리다. 디지털 재화에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복제 불가능한 고유속성을 부여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비트코인과 쌍벽을 이루는 가상화폐 플랫폼인 이더리움이 주로 이용된다는 정도면 될 것이다. 경제학자로서 흥미로운 부분은 그동안 눈에 잘 안 띄던 블록체인 기술의 유용성이 현실로 드러난 사례라는 점과, 새롭게 창출된 자산과 재산권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의 여부다.
시장거래는 상호 간의 신뢰를 보장할 제도적 기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블록체인 기술은 국가와 정부가 제공하는 제도적 기반에 의존하지 않고도 신뢰를 보장할 수단을 제공한다. 국가 권위가 통용에 필수적인 화폐가 가장 먼저 블록체인의 응용 대상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블록체인이 더 유용해지려면 계약과 거래의 인프라로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NFT는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정부로서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범위의 디지털 저작권 확립이 가능해진 것이다. 비트코인과 달리 스마트 계약이 가능한 이더리움도 자신의 유용성을 증명한 셈이다.
한편 새로운 재산권 창출의 의미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NFT는 경제학적 의미의 공공재 성격에 가까웠던 디지털 재화를 사적 재화로 만들어 낸다. 이때 공공재 성격이란 타인의 사용을 배제할 방법이 없어서 사고파는 상업적 거래가 어려운 재화를 의미한다.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재화는 공통적으로 이 문제를 겪었다. 음악과 동영상 등은 배포가격을 혁신적으로 낮춤으로써 해결 방안을 찾았지만 모든 경우에 통용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NFT는 한 가지 실마리를 제공한 셈이다. 문제는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재산권은 거래할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유행과 주목효과의 덕을 보고 있지만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디지털 재화를 쪼개어 사고파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진짜 승부는 NFT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모델이 나타나고 투자와 가치 창출이 이루어질 것인지에 달려 있다. NFT의 미래가 주목되는 이유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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