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글로벌 금융 선진국 될 천재일우의 기회 ‘가상자산 금융’

By 이준행   Posted: 2021-04-22

공공 영역의 종사자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블록체인은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 알겠는데, 과연 비트코인이나 가상자산은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다. 안타깝게도 블록체인의 기술적 효용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만, 가상자산은 그렇지 않다. 단순 기술과는 달리 가상자산의 효용은 사회적·이념적 맥락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트코인이 표상하는 자유의 가치는 어떤 이들에게는 자금 세탁 위협으로 보일 수 있고 가상자산이 함의하고 있는 민주의 가치는 기득권에게는 사회 혼란의 불씨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장 보편적인 가상자산 관련 논의는 오로지 ‘투자수익’이며 비트코인이 제시하는 미래사회의 비전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에게 비트코인은 그저 사회적 가치와 괴리된 투기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하나의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경우 가상자산이 사회에 제공하는 가치는 너무도 명확해진다. 금전적 가치를 지닌 자산이 새로 생겼다는 것은 곧 그 자산을 매개로 한 금융업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비트코인이 인터넷 자산인 만큼 이를 매개로 한 금융업은 기존 금융산업보다 글로벌하고 개방적이다.

금융업의 발달은 국가 국내총생산(GDP), 국민의 삶의 질 개선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라는 빅뱅으로 인해 태동한 ‘가상자산 산업’은 그 본질이 금융업과 닮아 있기에 국가 의지에 따라서 한국이 글로벌한 산업경쟁력을 갖은 금융선진국이 될 수도 있다. 이번 기고문에서는 가상자산 금융업이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어떠한 가능성을 제공하며,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가치저장수단 된 비트코인, 가상자산 금융의 초석 마련

금융업은 물질적인 자원을 가진 자와 필요한 자를 구속력 있는 계약관계로 연결시킴으로써 양측의 물질적 욕구를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산업이다. 이 계약관계에서 양측 간 거래의 매개이자 객채가 되는 것은 가치저장 수단이다. 가치저장 수단이 화폐일 수도 있고, 혹은 담보로 잡는 게 가능한 부동산일 수도 있다. 금전적인 가치를 거래 당사자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자산이면 금융계약의 매개체로서 충분하다.

비트코인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그 금전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자산이 됐다. 시총 1조달러를 초과하는 자산으로 전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보편적인 가치저장 수단이 돼버렸다. 미화, 국채, 금, 주식으로 금융업이 가능한 것처럼 비트코인을 매개로 한 수많은 금융 거래가 가능하다. 새로운 금융업이 가능하다는 뜻은 증권업에서 GDP가 창출되듯 가상자산업에서도 고용이 창출되고, 조세가 가능하며 기업의 투자가 이뤄진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가상자산 금융업은 기존 금융업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나다. 블록체인은 거래 내역이나 계약을 개방된 인터넷 환경에서도 그 누구도 조작할 수 없게 해주기 때문에 국가 기관의 감사나 공권력 없이도 작동이 가능하다. 인터넷에서 국경을 초월한 금융이 가능해지고 인터넷처럼 모두에게 열려 있는 아주 손쉬운 금융이 가능하다. 가상자산을 매개로 하는 블록체인 금융은 유튜브가 국경을 초월해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낸 것과 같이 수없이 다양한 금융 상품을 만들어내 아프리카 등지의 그간 금융 혜택을 받지 못해온 수십억 인구를 글로벌 경제시스템에 편입시킬 것이다. 즉 실물경제와 동반 성장이 가능한 글로벌 금융산업으로의 발전이 가능하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가상자산 금융, 한국의 금융 선진국 도약 기회 제공

이러한 블록체인 금융업의 태동은 한국이 ‘금융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제공한다. 달러와 은행 인트라넷을 기반으로 한 기존 금융업의 경우 한국이 기축화폐를 보유한 기존 금융 선진국을 제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쉽지 않다. 원화 기반 금융 상품은 틈새 상품일 뿐이고 미국이나 유럽의 금융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성과 채널 장악력을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은 그러한 구조적인 진입장벽이 존재하지 않는 전 세계적으로 평등한 경쟁판이다.

만일 이러한 새로운 금융 산업 태동기에 한국이 어느 정도 유의미한 위치를 차지한다면 글로벌 가상자산 유동성에 과금하는 세원과 GDP 효과가 생길 뿐만 아니라 금융선진국이 누려온 수많은 이점을 한국도 누릴 수 있다. 첫 번째로 한국 기업의 자본 조달이 쉬워진다. 실제로 금융산업의 발전은 특히 첨단기업의 성장성과 매우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 두 번째로 고급 정보가 보다 빠르게 들어올 것이다. 이는 보다 많은 투자 기회와 자본 이득의 전반적인 개선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금융 비용이 저렴해진다. 2019년 파생결합증권(DLS) 사태 때 한국의 투자자들은 월가 투자자들이라면 절대 사지 않을 금융상품을 사기 위해 외국계 투자은행에 국내 증권사의 2배의 수수료를 지출했다.

이렇게 명확한 가치를 창출하는 가상자산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상자산 산업이 신종 글로벌 금융산업인 만큼 정부의 역할이 아주 중추적이다. 실제로 역사가 니얼 퍼거슨은 금융 관련 제도의 확립이 제국을 만든다는 이론을 주창한 바 있다. 국가가 보증하는 제도는 금융 거래자들에게 신뢰를 주고, 신뢰가 있는 곳에서 플랫폼이 만들어진다. 17세기 유럽 전역에서 거래되던 금 어음을 국가가 보증해주는 ‘암스테르담 은행’이 생기면서 암스테르담의 금융업이 번성했고, 네덜란드는 황금시대를 맞았다.

중국이 금지한 가상자산사업자를 한국 정부가 금융기관 대하듯 관리하고 보증해주면 한국은 아시아의 가상자산 금융 허브가 될 것이다. 즉 가상자산의 스마트한 제도화와 외국인과 내국인 모두에게 평등하고 일관되게 법 적용을 하겠다는 법치주의 정신만으로 한국이 금융선진국으로서 수많은 효용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투기로 인식되고 있는 가상자산을 산업으로서 육성시킬 대중적 명분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테마 아래 분류된 혁신기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산업 진흥의 이유를 대중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고로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을 분리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가상자산이 있는 블록체인만이 글로벌하고 투명하고 개방적인, 고로 포괄적인 금융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대중이 납득하기만 한다면 지금까지의 한국의 경로가 변경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가상자산 산업 진흥은 연계 일자리 창출만이 아닌, 한국이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를 대대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글로벌 세원을 확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 전 세계 자본과 촘촘하게 연결돼 있는 금융선진국으로서의 국가 경쟁력은 평화로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국제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국력과 직결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지난 6년간 가상자산 사업을 해온 필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가상자산 제도화를 통해 한국이 가상자산 금융선진국으로 발돋움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이준행 스트리미 대표]

이준행 대표는 가상자산 거래소인 고팍스를 운영하는 블록체인 기술 기업 스트리미의 창업자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맥킨지 등에서 근무하다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가능성을 깨닫고 2015년 스트리미를 창업했다. 역사를 전공한 인문학도답게 암호화폐의 인문학적 의미와 새로운 금융이 초래할 사회의 변화를 담담하게 풀어놓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