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은 블록체인을 발전시킬 수 없다

By 조재우   Posted: 2021-02-17

필자만의 기우일까, 2017년 블록체인 시장이 달아오를 때 우리나라가 그 중심에 있던 것과 달리 이번 블록체인 강세장에서는 우리나라가 소외된 느낌이다. 우리가 주춤한 사이 미국에서는 암호화폐(암호자산, 가상자산, 가상화폐 등 여러 용어가 있지만 여기선 일단 가장 익숙한 암호화폐로 사용하겠다)에 대한 기관투자가 시작되었고, 채굴 산업이 발전하고 있으며, 중국은 국가 블록체인과 CBDC를 만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아니지만 채굴의 중심지인 ‘스탄’ 국가 중 하나인 파키스탄은 국영 비트코인 채굴장을 설립하기까지 했다.

출처 = 게티이미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분리, 득보다 실

이렇게 흐름이 바뀌게 된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결정적인 하나를 꼽자면 정부의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분리 정책이다. 블록체인은 육성하되 암호화폐는 규제하겠다고 하는 이 정책 기조에 따라 수많은 블록체인 시범사업과 수백억 원의 예산 투자가 이루어졌지만 정작 세계 시장 흐름은 우리가 한때 가상 징표로 폄훼하고 규제 대상으로 삼던 암호화폐를 수용하고 활용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하여 정책을 편 이유는 블록체인이 핵심이고 암호화폐는 부수적이라는 인식, 그리고 블록체인은 좋은 것이고 암호화폐는 나쁜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몇 년 전 금융위원회는 업계가 자장면(블록체인)을 잘 만들어야 하는데 쿠폰(암호화폐)을 잘 만들려고 한다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 당시 암호화폐와 연관된 부작용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범람하는 ICO 속에서 사기성 프로젝트가 넘쳐났고, 부도덕한 거래소는 고객 자산을 유용하고 시장을 조작하면서 부당한 이익을 취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암호화폐 자체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ICO나 거래소를 운영하는 주체의 문제다. 유사수신이나 다단계 사기와 같은 행위들은 암호화폐가 나오기 한참 전부터 있었다. 암호화폐는 단지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암호화폐를 쓰는 주체와 목적을 잘 규제한다면 이러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다단계 판매도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정부는 아주 과감하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갈라놓고 한쪽은 좋은 것으로, 다른 한쪽은 나쁜 것으로 규정했다.

왜 블록체인에서 암호화폐를 갈라놓을 수 없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 생각된다. 예전부터 이에 대해 명확하고 논리적인 의견을 개진한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논리를 나름대로 요약하자면 블록체인이란 분산장부라는 공학적 장치와 암호화폐라는 사회경제적 장치가 합쳐진 기술이기에 이 둘을 분리하면 진정한 블록체인, 사회를 혁신하는 블록체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분법 대신 사회적 합의 끌어내야

대신 여기에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정부의 이분법적 해결 방식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단순하고 신속하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했을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위험성을 최대한 제거하고자 하는 의도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정부가 무언가를 주도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기에 문제에 대한 책임도 정부가 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자연스럽게 조금이라도 위험성이 있는 것, 정부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갖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암호화폐라는 완전히 새로운, 그리고 중앙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는 정부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 부족이다. 블록체인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그리고 이것이 사회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을 때 국가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기술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문제를 정의함으로써 사회가 공동으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2013년 1000달러를 넘어서며 광풍을 일으켰을 때, 이후 3년이 지나고 다시 1000달러를 넘기며 또 다른 광풍을 준비하고 있을 때 제도권에서 블록체인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면 미국에서는 2014년 실크로드 사건이 터졌을 때 공청회를 열고 3800개가 넘는 의견을 수렴한 뒤 비트라이선스를 만들었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ICO 문제를 이슈화한 프랑스는 2017년 10월부터 두 달 동안 완전히 공개된 의견 수렴을 통해 초안을 만들고, 다시 한 번 온라인 의견 수렴을 거쳐 관련 법안을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국가들은 사회적 합의라는 기반 위에서 암호화폐를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소홀히 해왔고, 사회적 합의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시장 광풍이라는 외부 충격에 의해 갑자기 부작용이 발생했기에 정부 입장에선 일단 급한 불을 끄는 차원에서 대강 선을 긋는 게 최선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이분법적 해결 방법이 여기에서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익명성 코인을 제재하는 것만 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작년에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거래소와 같은 가상자산사업자에게 암호화폐 수신자와 발신자 정보를 수집하여 돈세탁을 방지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자 우리나라는 익명성 기능을 가진 코인을 상장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는 언뜻 보면 합당한 처사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거래소에서 퇴출당한 익명 코인들은 항상 익명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개인 지갑에서 원할 때 익명 송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거래소를 거치면 송금 과정에서 개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익명성은 약화되고 돈세탁 위험은 줄어들게 된다. 만약 이 문제에 대해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면 “익명성 코인은 퇴출, 비익명성 코인은 유지”라는 이분법적인 해법을 선택하는 대신 익명성 코인의 위험성을 줄이는 방안으로서 거래소를 활용하는 쪽으로 진행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국 거래소에서는 지금도 익명성 코인들이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과정에서 또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시도가 없었다는 점이다. 왜 익명성 코인이 문제인지, 익명성 코인은 어떻게 익명을 구현하는지,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어떤 경우에 문제가 되는지 등 문제나 사실관계도 시민사회와 제대로 공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FATF가 내린 결정에 따른다며 한순간에 익명성 코인이라는 것들을 배제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 결정 때문에 어쩌면 우리나라는 익명성 코인 관련 범죄를 해결하기가 더 어려워졌을지도 모른다.

◆이분법적 사고, 다른 신기술에도 부정적

이러한 문제들은 블록체인에서뿐 아니라 다른 신기술에서도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기술은 점차 빠르게 발전하고,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것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지금처럼 계속 정부 중심의 이분법적인 대응을 반복한다면 우리는 문제의 핵심이 아닌 현상만을 건드리는 수준에 머물 것이다. 잡초를 없애려면 뿌리를 뽑아야 한다. 잡초 뿌리를 뽑기 힘들다며 줄기만 잘라내면 뿌리는 점점 깊어지고 잡초는 더 왕성히 자라게 된다. 다행히 지금 우리 사회는 뿌리를 캐는 일을 함께할 수많은 시민들이 있다. 신속하고 단호한 정책도 좋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이분법은 블록체인을,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를 발전시킬 수 없다.

[조재우 한성대학교 교수]

조재우 교수는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스마트도시계획/환경비즈니스 트랙 조교수로 스팀잇을 움직이는 20명의 증인 중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선출된 것으로 유명하다. 석사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박사는 UC 얼바인(Irvine)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했으며 유학 도중인 2013년부터 블록체인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현재도 스팀잇에서 증인으로 활동 중이며 카카오벤처스에 블록체인의 토큰 이코노미 등과 관련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칼럼에서는 주로 블록체인 산업 또는 정책 발전방안을 논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