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규제, 잃어버린 3년과 결별하기

By 박종백   Posted: 2020-12-08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정부가 2017년 9월 29일 모든 코인 공개(ICO)를 전면 금지한 이래 벌써 3년이 지났다. 블록체인과 암호 자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그 사이에 식었지만 글로벌 업계와 전문가, 각국의 정부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사업화하며 법·제도 수립을 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페이팔이 비트코인 등으로 구매대금 결제 허용 계획을 발표했고, JP모건은 얼마 전 자체적으로 개발한 코인 JPM 코인을 자체 네트워크에서 자금 이체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의 최대 은행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이 암호자산거래소 설립을 발표했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암호자산 규정안을 제출했으며, 스위스가 분산원장 거래와 사업에 관한 몇 건의 법률을 개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했다.

2017년 말부터 2018년까지 우리 정부가 공표한 가상통화에 대한 대응 정책은 대부분 당시 투기 열풍을 잠재우고, 가상통화 및 ICO와 관련된 유사수신행위, 다단계판매, 사기 행위 등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때 형성된 “가상통화는 안 된다”로 요약되는 정부 정책은 현재까지 모든 정책과 법령해석, 법제 개정 논의의 기본 태도로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가상통화와 구분한 블록체인 기술은 장려하고 지원하겠다는 정책 기조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현상만 보면, 3년 동안 투기 열풍은 잠재워졌고, 정부가 금지한 ICO는 거의 사라졌으니 우리 정부의 금지적 정책은 대성공이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글로벌 시장이 스캠 ICO를 인식하고 ICO의 효용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이성을 찾은 투자자들이 합리적 투자판단을 하게 된 것이 주된 원인이지 특정 국가의 정책 효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3년 사이 비트코인이 사기라고 했던 JP모건조차 규제 제한 없이 직접 자체 코인을 개발해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스위스는 2017년 암호화폐의 3가지 유형 구분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여러 논의 과정을 거쳐 9월 말 수 개 법률을 개정했다. 미국 통화감독청은 은행들이 암호자산 수탁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싱가포르의 최대 은행은 거래소를 개설하게 되고, 여러 나라에서 증권형 토큰 공개(STO)를 할 수 있는 라이선스 유형이 제도화되는 큰 변화가 있었다.

지난 3년간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그 사이에 블록체인 기술이 주는 효용과 가치에 기대를 가진 과학자, 기술자, 기업가, 자본이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물론 아직 어느 산업이나 인간의 생활방식을 뒤흔들 만한 킬러 앱이 아직 나온 것은 아니지만, 진행 열기와 속도는 꽤 뜨겁다.

그 사이의 글로벌시장의 동향을 보면, 모든 자산을 블록체인 토큰화하고, 토큰 거래를 글로벌 규모로 더 자유롭고 더 효율적이며 값싸게 하도록 하며 블록체인 기술을 금융, 통신, 물류, 의료, 유통 등 다양한 산업과 본인인증, 통화정책, 부동산등기, 여론조사, 선거 등 제도 운용에 도입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구체적인 분야나 유형은 너무 많아서 물론 다 열거할 수도 없다.

한국에서 자산의 토큰화는 부동산이 선발주자로 보인다. 부동산 자체 소유권을 토큰화하기보다는 부동산 펀드나 부동산 투자에 관한 권리를 증권화해 블록체인 토큰에 담는 것이다. 소액을 가진 일반투자자도 기존에 기관투자가들만 주로 누렸던 투자 기회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과 부동산 보유자들도 더 손쉽게 자산을 유동화할 수 있으며, 거래의 신속화, 저비용화, 투명화라는 장점도 내세운다. 최근 몇몇 부동산 투자구조가 규제 샌드박스 지정을 받으면서 투자자, 보유자, 부동산 투자업계 모두 관심을 갖고 시장조사와 투자구조 개발 노력이 확대되고 있다.

토큰은 이용형과 지급수단형, 증권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용형, 지급수단형 토큰의 거래는 기존의 상품시장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 암호화폐 거래소로 지속적으로 신뢰를 구축하고 있고, 증권형 토큰에 대해서는 기존의 증권거래소의 성격에 토큰 특성을 반영한 수정 구조를 제도화는 것을 모색하고 있다.

가장 보수적으로 여겨지는 은행들도 암호 자산 수탁 서비스 수요가 늘 것이고, 은행이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보고 수업 업무를 준비하고 있고, 지갑 서비스나 거래소 등 기술 기반 회사들도 수탁 서비스를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는 탈중앙화 금융(De-Fi)가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바, 자금 예치와 대출 등 금융업을 중앙화된 주체가 지배하지 않고, 알고리즘에 의해 운영되는 다양한 업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동향만 보면 한국의 블록체인 업계도 다른 나라의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의 발전에 동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산업과 비즈니스를 둘러싼 규제의 틀과 그 내용을 포함해 시장을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국내에서 관련 규제는 암호자산에 대하여 금지적, 제한적인 면이 강한 데에다 그 근거가 공식 법규화가 되지 않아 불명확함을 가지고 있고, 그 결과로 불확실성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어떤 사업이든 블록체인 토큰이 포함된 것이면 제도화하지 않고, 억제하거나 금지하는 등 적극적으로 방임해 온 것이 사실이다. 암호자산 거래소만 특별히 정부가 라이선스를 부여하지도, 금지하지도 않아, 시장 수요에 근거해 존속하거나 퇴출되고 있다.

그 사이에 유일하게 법·제도가 달라진 것은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이 개정된 점인데, 위 법은 자금세탁방지라는 단일 목적만을 위한 것이고, 이번 개정은 가상자산 업자에게도 자금세탁방지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일 뿐이어서 그 외 사업을 하는 데 관련된 규제사항의 공백과 불명확성은 전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업계가 그렇듯이 불법적 행위를 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상존한다. 암호화폐의 투기적 열풍과 거래 당사자들의 탐욕과 무지가 조장해온 여러 가지 탈법행위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국가가 투자자나 이용자 보호 측면에서 그를 엄정하게 다루고 단죄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으로는 분산원장 기술과 블록체인 산업의 긍정적 가치를 믿고, 기업가적 도전정신으로 그것도 글로벌 시장까지 내다보는 비전으로 도전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나 기업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3년간의 정책과 규제는 현재 또는 장래의 범죄의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데만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혁신과 글로벌 도전정신, 기업가 정신은 홀대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 불거진 라임, 옵티머스와 같은 펀드 사기가 있다 해서, 앞으로 펀드라는 투자방식 자체를 전혀 불허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양한 이용형 토큰이 ICO 이후에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한 기본적 이유가 토큰이라는 형식이 새롭게 제공해 주는 핵심가치가 무엇일까라는 의심 때문이라면, 증권형 토큰은 자산이라는 실질가치가 뒷받침되는 점으로 수요가 멈추지 않고, 체계화, 제도화의 요구를 더 많이 받는다. 이에 여러 나라에서 이러한 효용을 인정하고 증권형 토큰의 STO를 기존 법령체계의 엄격한 요건하에서 허용하거나 새로운 규제를 정립하는 방안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와 법·제도 정립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존의 자본시장법 하에서의 증권에 해당되는 토큰에 대해서 공모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거나 자산운용업 인가 요건을 갖추더라도 그를 승인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됨은 물론, 특수성을 감안한 새로운 법·제도 논의를 할 기미도 지금까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규제에 있어 그나마 한 가지 진전이 있다면 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에 규제 샌드박스를 인가한 사례가 생긴 점이다. 법·제도 전반을 정립하기 이전이라도 한시적이고 제한적으로 특정 비즈니스를 실험적으로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로 1년여 사이에 부동산 투자 거래 플랫폼에 몇 건 허용하였다.

잃어버린 3년이 뼈아프지만, 샌드박스 제도를 마중물 삼아 앞으로 우리가 블록체인 산업의 글로벌 트렌드에 앞서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지금부터라도 전반적인 법·제도와 규제 개선은 꼭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한다.

첫째, 향후 기술의 발전 내용과 그것이 사회, 경제구조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자.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임을 받아들이는 개인과 조직만이 오늘처럼 기술과 산업의 변화가 광범위하고 빠른 시대에, 오히려 이해와 대응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여러 주요 국가의 정책 선언이나 법령 제 개정의 이유에서 겸허하게 자신들은 기술의 변화가 가져올 사회 경제의 변화를 다 예측하지 못한다는 자기 고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점이 오히려 신뢰를 불러일으킨다.

그에 비해 우리 정부가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수차례에 걸쳐 공표한 정책의 보도자료는 위험성과 그 대응조치에 대한 확신이 강한 나머지 융통성 있는 법·제도 정립 여지를 스스로 없앤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아직 모든 공식, 비공식 문서에서 ‘가상통화’라는 용어만을 고집함으로써 이용형, 지급수단형, 증권형의 구분과 차이점을 담아내지 못하고 암호화폐, 암호자산 등으로 더 절절한 용어 채택을 고민하는 과정을 차단해 버린 아쉬움을 준다.

둘째, 우리가 우려하는 위험성이 무엇인지, 실제 어느 정도인지 등에 대해서 깊이 분석해서 그 위험에 걸맞은 정도의 대책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막연한 위험성에 기초한 두려움은 위험의 요인을 제거하지도 못하면서, 암호자산의 전반적인 면모를 균형 있게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며,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대중을 호도하는 방편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많은 자산이 투기의 대상이 됨에도 그 이유만으로 그 자산을 금지하지 않는 것처럼, 암호화폐가 투기 대상이 되기 때문에 금지한다는 것은 너무 단세포적이다. FATF도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제도와 규제를 정립함에 있어서 측정되는 위험성에 비례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는 위험기반접근법(Risk based Approach)을 취하고 있는 점을 새겨, 좀 더 구체적으로 암호자산을 제도화할 때 생길 위험성을 계측하고, 더 나아가 암호자산이 인간의 삶에 갖다 줄 혁신적 효용과 비교·형량할 필요도 있다.

셋째, 정부, 입법자, 학계, 전문가, 업계들이 참여하는 기본적 학제적 연구를 통해 한국판 블록체인과 암호자산 제도화를 위한 연구 백서를 작성하고 지속적 업데이트도 필요하다. 연구 백서 작성 과정에서 사회적, 국가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향후 정책 수립과 법·제도 정비에 기본 자료로 써서 체계적이고 미래 시대에 맞는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위험은 다스리되 적극적으로 기술 발전과 그로 인한 산업 발전의 기회를 최대한 수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법·제도와 규제 틀을 만들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블록체인 토큰으로 결제하고 투자하는 등 디지털 방식에 기하여 생성된 자산과 그 거래 방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정책당국이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한국이 IT 비즈니스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한 것은 새로운 서비스 이용자로서 특히 한국의 젊은 세대가 남다른 감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고, 암호자산 투자에 관심이 컸던 점은 긍정적으로 암호자산산업 시장을 육성하기에 좋은 바탕으로 기능할 수도 있음을 일부 인정해 암호자산산업을 일정한 원칙과 범위 내에서 육성하는 제도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블록체인 산업의 발전이 어디까지 이루어질지, 구글의 검색엔진 같은 인터넷의 킬러 앱이 블록체인 분야에서 나올지 여부와 그 시기를 아직 우리는 모르지만, 지구촌에서 진행되고 있는 큰 흐름을 도외시하거나 그 흐름을 알지만 규제의 틀에 갇혀 아무 것도 못 하는 치명적 실수는 우리 국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면 남달리 빠르고 효율적인 실행을 할 수 있는 DNA를 갖고 있다.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이 가져올 세상의 엄청난 파괴적 변화의 과정에서 퍼스트 무버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패스트 팔로어가 될 기회까지 놓치는 일은 없기를 기원한다.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박종백 변호사는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의 변호사다. 1992년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래 1999년 영국 외무성의 Chevening Scholarship을 받아 런던정경대학에서 국제금융법으로 LL.M.을 취득하고 영국 로펌인 리처드 버틀러의 런던본사, 홍콩지사에서 약 1년간 근무한 후 귀국했다. 이후 다양한 금융, 기업거래에 대한 자문을 수행해왔으며 2007년부터 오픈소스 라이선스와 컴플라이언스에 관한 자문업무를 하면서 FSFE와 리눅스 파운데이션이 개최하는 국제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미래창조과학부의 후원으로 FOSSCON KOREA의 개최도 주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제18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