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사물함, 은행이 되다

By 이기호   Posted: 2020-06-12

블록체인 학교, 선생님 없이 수업하는 방법 ⑧

사탕들이 오가는 블록체인 학교에서 물건을 보관하는 사물함은 어느새 은행과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물론 사물함을 은행처럼 사용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어떤 면에서는 실제 은행보다 더 나아 보이기도 한다. 이번 시간에는 블록체인 학교에서 사물함을 어떻게 은행처럼 활용하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자.

출처=언스플래시

▲ 출처=언스플래시

◆ “사탕 보관하는 사물함, 대신 관리해드려요”

사토시가 비트코인 교실의 정숙과 청결을 학생끼리 지키기 위해 수립했던 규칙은 매우 간단했다. 교실의 정리 정돈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에게는 사탕이라는 보상을, 규칙을 지키지 않는 학생에게는 페널티를 주는 것이었다. 이는 학생들이 자기 조직 시스템을 구축해나가는 토대가 되었다. 이런 토대하에 학생들은 수년간 수많은 교실에서 이해관계, 상호 호혜관계 등 매우 복잡한 관계를 구축해왔다. 그리고 관계에 기인해 학교의 발전을 꾀하는 여러 활동을 추구하고 있다. 즉 블록체인 학교의 학생들은 외부 압력이나 지시 없이 스스로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 조직을 구성하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물함의 활용 방법을 찾는 것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교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의 블록체인 학교의 사물함은 64자리나 되는 비밀번호를 정확히 입력해야만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비밀번호는 0에서 9까지 10개 숫자에 A에서 F까지 6개 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사물함 번호만 서로 알 수 있을 뿐, 자신의 것이 아닌 사물함을 절대로 사용할 수 없다. 또한 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사물함에 몇 개의 사탕이 들어 있는지도 사물함 번호 옆에 자동으로 적혀 있다. 게다가 블록체인 교실의 크기가 자유롭게 늘어나므로 한 학생이 수만 개의 사물함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물함의 특징 때문에 사물함 비밀번호를 잃어버리는 학생들이 자주 생겨난다. 누구는 종이에 적어두었다가 잃어버리기도 하고, 누구는 사진으로 찍어두었다가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비밀번호를 잃어버린다는 뜻은 사물함에 보관해둔 사탕까지 잃어버린다는 것과 같다. 사물함을 힘으로 부수어서 사탕을 꺼내려고 한다면, 교실의 청결과 정리 정돈을 담당하는 학생들에게 곧바로 제지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단점을 개선하고자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더라도 자신의 사물함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준비 중인 교실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뚜렷한 방법이 없는 상태다.

블록체인 학교에 다니고는 있지만, 사물함 비밀번호를 스스로 잘 관리할 자신이 없는 학생이 상당히 많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사물함과 그 안의 사탕, 그리고 용돈까지 대신 맡아주고 관리해주는 덩치 좋은 학생들의 그룹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초기에는 기존의 마이닝풀 그룹 친구들이 사물함을 관리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외부의 실제 은행에서 일해본 경험을 살려 사물함을 관리해주는 친구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마치 현금처럼 쓰이는 사탕과 더불어 각국의 화폐까지 보관하게 되니, 자본이 한곳에 축적되는 것과 동일한 결과로 사물함 관리 그룹이 은행 역할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 교환 중개 넘어 대출, 투자까지

처음에 사물함 관리 그룹은 사탕과 각국 화폐를 신속하게 교환해주는 역할만을 대신했다. 그런데 이들은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사탕을 한 번 맡겨둔 학생들이 생각보다 자주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실제 은행이 지급준비율을 두는 것처럼, 사물함 관리 그룹도 사탕과 현금을 일정한 비율만 유지하면서 이를 운용하는 방법을 시도해보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실험 정신을 바탕으로 블록체인 학교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투자를 집행해보고 있다. 이러한 학생들로부터 시작되는 블록체인 학교의 전반적인 발전이 자신의 그룹 발전에도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물함 관리 그룹 외에도 블록체인 학교 사물함만이 갖는 특징을 십분 활용하는 그룹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그중에서 사탕과 각국 화폐 간의 교환 비율이 계속해서 변동하는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하는 그룹도 매우 주목받고 있다. 사탕을 화폐처럼 사용하기 위해선 그 교환 비율이 일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초과 담보 설정이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사탕 1개가 미화 150달러에 교환되고 있다면, 이를 담보로 설정하고 미화 100달러어치의 새로운 사탕을 만들어주는 식이다. 비트코인 사탕 1개와 미국 화폐와의 교환 비율이 100달러 이하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 변동폭을 줄인 채 사용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사탕을 스테이블 코인이라고 부른다.

이 사탕을 새로이 만들려면, 이미 교환 비율을 지니고 있는 사탕을 특정한 사물함에 넣어 두어야만 한다. 더 많은 사탕이 사물함에 보관될수록 더 많은 스테이블 코인 사탕이 만들어진다. 당연히 이 사탕을 사용하려면 사용료를 내야만 한다. 그 사용료를 사물함에 사탕을 보관해둔 모든 학생에게 나눠줘 학생들이 더 많은 사탕을 보관하도록 유인하는 중이다. 어느새 미화 12억달러어치의 사탕이 이러한 사물함에 보관돼 있고, 그 크기도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 “신뢰 기반해야 합의할 수 있다”

이처럼 사물함을 이용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각자 비밀번호를 외워야 하는 불편함도 개선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학생 간의 합의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작성해둔 규칙대로만 행동하는 것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로 얼마 전에 이더 사탕을 사물함에 맡기고 스테이블 코인 사탕을 빌렸던 친구들이 큰 피해를 보는 일이 있었다. 이더 사탕과 미국 화폐와의 교환 비율이 급작스럽게 하락하면서 맡겨두었던 이더 사탕이 더 이상 초과 담보로서 역할을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물함을 관리하는 그룹의 학생들이 이더 사탕의 교환 비율을 갑자기 떨어뜨릴 수 있는 여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다만 피해를 본 학생들은 이미 정해둔 규칙이기에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고 이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만약 학생끼리 이를 합의해 해결할 수 있었다면, 이 사물함을 이용할 때에 더욱 안심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블록체인 학교의 사물함과 이를 관리하는 그룹은 새로운 시스템을 갖춘 은행으로 발전할 것이다. 또한 이들은 기존 은행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던 비합리적이고 부도덕한 문제점을 해결할 가능성도 충분히 갖고 있다. 따라서 블록체인 기술이 학교와 교실에 제공하는 다양한 특장점을 더욱 잘 살리기 위해서는 앞으로 학생들도 더욱 성숙해져야만 할 것이다.

[이기호 EOS 얼라이언스 매니저]

이기호 EOS 얼라이언스 매니저는 암호화폐 시가총액 순위 10위권인 EOS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블록체인 전문가다. EOS 얼라이언스에서 한국 담당 매니저를 맡고 있으며 EOS의 출범부터 현재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꿰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서 거버넌스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학교에 빗대 알기 쉽게 풀어쓰는 기획을 연재한다.